1. 이별이 유일하게 좋은 점


    방을 나서려던 경희는 다시 돌아와
    지환의 얼굴을 내려다 봤다.
    넓은 이마, 짙고 숱 많은 눈썹,
    단정한 콧날과 순해 보이는 입술,
    웃으면 세로 줄을 그리는 볼
    그 모든 것을 가슴 속에 판박이 해두느라
    경희의 눈동자가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.

    이별이 유일하게 좋은 점이 있다면,
    적어도 더 나빠질 일은 없다는 것이다.
    늙어가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고
    싸우거나 실망하거나 소리칠 필요가 없다.
    죽을 때까지 이별하던 순간의 모습으로만
   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.

    유민주의

     
  2. 한 입 앙 하면 보드카가 줄줄 흐르는 것이 신기하고 느낌이 좋아서 조금씩 나눠 먹는 건줄도 모르고 한 입에 원샷했다. 덕분에 1초 취한 기분으로 6년 전 나를 봤다. 여전한 그 모습을 귀여워해준 너를 어떻게 밀어내야 하는지. 가방에 챙겨온 한 개는 그 날 먹어야 겠다.

     
  3. 무지 바쁜 요즘이다. 바빠지니 좋은 점은 내가 개인적으로 쓰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는 점이다. 그게 뭐가 좋냐고. 줄어든 내 개인적인 시간을 어느 곳에 써야 행복할 수 있는지 드디어 진지하게 점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. 시간이 남아돌던 시절에 나는 네일샵에서 네일받고 패션잡지 읽고 낮잠자고 친구들 만나서 수다떨고 쇼핑하는 게 내 행복의 베이스라고 생각했다. 이러한 사치가 있어야만 내 라이프 싸이클이 원활하게 돌아간다고. 하지만 정작 무지하게 바빠지고 나니 나는 (무순) 1 영화 2 극장가는 길까지의 걸음과 낮의 햇빛 3 맛있는 커피와 차 4 가만히 핀 꽃 5 조권형 6 운동 7 책 8 가족 만 있으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충만한 삶을 살게 되는 사람이었다. 바쁜 와중에도 내가 기필코 찾게되는 것들이 줄어들지 늘어날지 모르겠지만.. 내 소중 리스트에사 누락된 것들을 보고 있자니 나 진짜 어이없는 것에 시간을 썼던 것 같다. 이제 야무지게 살아야겠다.

     
  4. 이제부터 내 손이 닿이는 모든 것들은 사랑스러울 예정 !!

     
  5. 아끼고 아껴서 예쁜 분위기를 만드는 건 중요하다. 지지리 궁상을 떨 계획은 추호도 없지만 어떻게든 합리적인 가격으로 어마어마한 만족을 이끌어 내야한다는 게 나의 소비철학. 그런 점에서 앤쓰로폴로지는 미래 나의 혼수를 책임질 브랜드로 엄청 적절하다. 내가 누구랑 살든 (혼자 살게 될지도 모르지만) 우리 집은 항상 그리운 공간이면 좋겠다 !

     

  6. 너가 과거에 누굴 만났든 너가 과거에 어떤 짓을 했든 중요하지 않다고. 지금 너가 나를 좋아하는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잘 지내다가도 나는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는 너의 과거를 혼자서 헤집고 다닌다. 오로지 상상으로 떠난 그 과거 여행을 마치고 현재로 돌아오면 너를 떠나 지금은 행복한 과거 너의 애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. 너를 떠나면 나도 행복할 수 있을지가 늘 궁금했지만 무엇 때문인지 모를 그 무엇 때문에 떠나려는 시도도 하질 못한다. 낯설게 내리는 밤비가 나의 기분을 어떻게든 흔들어 보려고 내 살갗을 문질러도 내가 흔들리지 않고 평온했던 이유는 오직 너에게 있었는데 말이다. 그칠 줄 알았던 비는 여전히 창문을 튕기며 일관성 없는 음으로 나를 성가시게 한다. 26년을 지내다 보니 밤비는 내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. 내 살갗은 이렇게나 건조한데 기분은 왜 이렇게 눅눅해 곰팡이까지 만들어내는지 모르겠다. 어떻게든, 힘겹게 해낸 너와의 안녕이 감사한 밤이다.

     

  7. 2014.1월

    겨울왕국
    어바웃 타임
    인사이드 르윈
  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
    겨울왕국

     
  8. 어떻게든 더 좋아지는 건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. 가장 좋지만 어려운 적당히를 염두에 두고 그 선을 지키는 게 정답인 줄 알았던 나에게 그는 늘 평화를 선물했다. 나의 가장 쓸데 없고 멍청한 다짐을 툭 쳐서 쓰러뜨리는 멋쟁이와 함께 지내는 2012, 2013 덕분에 2014도 달달하다. 마음이 쏟아질 것만 같은 밤이다.